[2023] [歷史] 한국사의 사회와 사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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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3-16 14:0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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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류왕(榮留王) 때 혜관(慧灌)은 625년 日本 에 건너가 삼론종(三論宗)의 개조(開祖)가 되었고, 평원왕 때 담징(曇徵)은 日本 의 호류사[法隆寺] 금당(金堂)의 벽화를 그렸으며, 지묵·맷돌 등을 전하였다.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주름잡은 치마를 입었으며, 남자는 큰 소매가 달린 저고리와 통넓은 바지를 입었고 상투를 틀었다. 고구려에서 유행된 종파는 대승불교(大乘佛敎)인 삼론종이었다. 특히 10월에는 시조신(始祖神)을 모시는 동맹(東盟)이란 제전을 열어 부족의 전통을 재확인하고 결속을 강화하였다.
순서
다. 상류층에서는 바둑·투호(投壺)·축국(蹴鞠) 등 대륙식 오락을 즐겼고, 하류층에서는 무도·음악·석전(石戰)·씨름 등을 즐겼다. 가옥은 왕궁과 관청·사원 등에만 기와를 덮고, 일반 민가는 초가(草家)였으며 온돌을 사용하였다. 특히 미술은 고분(古墳:굴식돌방무덤)에서 그 대표적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, 무용총·수렵총·각저총(角抵塚) 등의 초기 벽화는 고졸(古拙)하고, 감신총(龕神塚) 등 중기의 그림은 섬세하며 사실적(寫實的)이고, 사신총(四神塚) 등 후기 벽화는 웅대하며 건실하다. 특히 혜량(惠亮)은 신라에 들어가 진흥왕 때 국통(國統)·주통(州統)·군통(郡統)의 교단조직에 공헌, 초대 국통이 되었으며, 영양왕 때 보덕(普德)은 연개소문의 도교(道敎) 장려로 백제에 들어가 열반종(涅槃宗)을 개창(開創)하였다. 고국양왕(故國壤王:재위 384∼391) 때는 영(令)을 내려 불법을 숭상하도록 권장하였고, 광개토대왕 때인 392년에는 평양에 9개의 절을 지었으며, 395년에는 동진의 승려 담시(曇始)가 들어와 활발히 전도하였다.
【불교】 372년(소수림왕 2) 전진(前秦)의 왕 부견(竪)의 명으로 순도(順道)가 불경(佛經)과 불상(佛像)을 가져왔고, 374년에는 동진의 승려 아도(阿道)가 들어와 불법을 전파하였다. 장례(葬禮) 풍속은 껴묻거리를 관 속에 넣는 후장(厚葬)의 풍속이 있었다. 강서고분(江西古墳)에 그려진 사신도(四神圖)는 벽화 중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흑·백·청·주홍·갈색 등으로 빛깔의 조화미는 물론, 힘과 패기가 넘치며, 쌍영총(雙楹塚)의 기마상(騎馬像)·남녀입상(男女立像), 30여 인물행렬도와 풍속도는 당시의 풍속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(data)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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【풍속】 고구려인은 검소·청결하고 상무적(尙武的)이며 기사(騎射)에 능하였다.
[歷史] 한국사의 사회와 사상
한국의 탄생시기 부터조선후기까지의 국가의 탄생과정, 제도, 군사, 경제, 사회생활, 문확과 음악 및 사상을 중점으로 분석한 자료 [이용대상]
설명
한국의 탄생시기 부터조선후기까지의 국가의 탄생과정, 제도, 군사, 경제, 사회생활, 문확과 음악 및 사상을 중점으로 분석한 reference(자료) [이용대상]
【미술】 고구려 예술의 특징은 와당(瓦當)의 귀신상(鬼神像)과 사신도(四神圖)의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힘과 정열이 넘치고 있는 점이다. 귀족의 모자는 소골(蘇骨)이라고 하여 깃[羽]과 금으로 장식한 비단으로 된 관을 썼으며, 관리는 등급에 따라 복색(服色)이 다르고 무사(武士)는 절풍(折風)이란 건을 썼다.
한국의 사상, 역사, 한국사회,
【도교】 도교(道敎) 전래에 관한 기록은 624년(영류왕 7) 당나라 고조 이연(李淵)이 도사(道使)를 파견하여 도법(道法)을 강론하도록 한 것으로 되어 있다아 643년 보장왕(寶藏王) 때 연개소문의 도교 장려책으로 숙달(叔達) 등 도사 8명이 입국하였다. 이때 불교를 탄압하였으므로 보덕이 백제로 망명하는 등 불교세력이 쇠퇴하였다. 평원왕(平原王) 때 승려 의연(義淵)은 위(魏)·제(齊)나라의 양대 고승인 법상(法上)에게 불교사를 배웠다.


